iZ가전하는 강원 뉴스/공감(이단체,이사람)

사진속~정선아리랑 수상로드

엔사이드 기자 블로그 2014. 9. 27. 10:12

 

이 땅의 등골에서 우러난 노래~짙푸른 청룡꿈을 꾸나니~ 어화청춘, 벗이여 가자스라 !!

[ATN뉴스/강원편집국]

 

길을 떠나며 ~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밥이다.아리랑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고종 시절인 1865년부터 1872년 사이였다. 당시 화재로 훼손되었던 경복궁의 중건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일꾼이 모였고,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팔도의 광대들도 모여들었다. 경복궁은 각 지역의 민요가 모이고 흘러가는 통로요 광장이었다. 특히 목재를 운반해 오던 강원도 정선지역의 떼꾼들이 부르던 아리랑이 일꾼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고종도 타령에 빠져들어 잘하는 이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목하 아리랑 바이러스가 시작된 것이었다. 유행은 한양뿐이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각자의 고향으로 되돌아간 일꾼들에 의해, 떠도는 광대들에 의해 지역적 특색에 맞춰 변화되며 유행하였으니 최초로 아리랑을 악보로 옮긴 헐버트는 말했다.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밥이다라고.

 


1926년 나운규 영화의 주제가 ‘아리랑’은 일제 치하의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과 맞물려 뜨거운 공감을 일으켰고, 소리 없던 눈물에 응축되었던 설움의 분출을 부르며 전국적인 대유행을 만들었다. 만주와 북간도 등지에서도, 광복군의 독립투쟁가로 불리고 정전을 선언하는 자리 등 대한민국의 위기와 고난의 수많은 장면에서 민족의 희망가로 발돋움했다.

 


오늘날, 음악적인 갈래로는 50여 종, 노랫말 수로는 8,000여 수, 분포지역으로는 한반도는 물론 128개국에 달하는 전 교포 사회에 퍼져있는 '아리랑'.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열린 선율'이 라 호평하며 자신들의 음반에 싣고 공연을 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노래 따라 물길 따라 ~

 

아리랑을 전한 떼꾼들, 그들은 아우라지강에서 태백산의 황장목으로 떼를 지어 급류를 타고 생과사의 래프팅을 하였다. 정선에서 영월까지의 비좁고 거친 물길을 꼴짜기 안이라 하여 ‘골안떼길’이라 하였고, 영월에서 마포까지의 물길을 ‘아랫강 물길’이라 하였다. 특히 골안뗏길은 험하여 “아침밥이 사잣밥”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위험천만한 떼,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건 이유가 있었다. 목숨을 담보한 만큼 큰돈이 쥐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말하는 “떼돈 번다”는말이이위험천만한래프팅에서생긴말이다.


<아리랑로드>는 길라잡이패(풍물단 소리꾼으로 구성된 공연팀)와 <아리랑로드> 순례단 50인이 모여 강원도 정선에서 출발한다. 임금의 관, 재궁의 재료인 황장목이 그려진 ‘황장노송도’를 모시고 여정의 무사무탈을 기원하는 강치성을 시작으로 골안 뗏목길의 4 대 여울인 ‘정선 북면의 상투비리’, ‘정선 용탄의 범여울’, ‘평창 미탄의 황새여울’, ‘영월 거운리의 된꼬까리’를 지난다. 그리고 충주호에서는 관광유람선에 승선하여 옛 남한강 수로를 내려가 두물머리를 지나 마포나루에 이르는 남한강 1천리 길을 가는 것이다.

 


“어화청춘! 벗이여 가자스라” <아리랑로드>는 역동적인 소리여행이다. 생애를 건 래프팅으로 나무와 노래를 운반했던 거친 물길이 기다리는 여정이다. 기본적으로는 버스에 승차하지만 상당한시간의 래프팅과 트래킹이 필요하다. 젊은 답사단이 함께해 발품으로 만난 아리랑의 사연을 온라인상에 올려 다시금 새로운 <아리랑로드>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여행이다.

 

 

[전국지역 상세뉴스 종합 일간지 - gw.atnnews.co.kr

 

출처 http://gw.atnnews.co.kr/web/news/view.php?idx=1132&sc_code=00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