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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와 이기는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가의(可依), 호는 송와(松窩)다. 1555년(명종 10)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홍문관 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후, 삼사 등 여러 관직과 강원도관찰사,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1600년(선조 33) 생을 마감할 때까지 46년간 관리생활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603년(선조 36)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데 녹선됐고,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기도 했다.
송와 이기 선생의 청백리에 뽑힐 수 있었던 청렴함을 전해주는 일화가 많다. 양주목사가 됐을 때는 선정을 베풀었다는 보고가 관찰사에 의해 올라왔고, 임진왜란 때는 순화군(順和君) 보를 수행하면서 고향인 강원도에서 의병을 모집했다.
대사헌일 때 말을 제대로 먹지지 못해 타고 가던 말이 거리에서 주저앉은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로 말이 피곤해 주저앉으면 사람들이 '대사헌의 말'이라고 했다는 것 등이 그 일화들이다.
이기 선생의 선영은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산43-1에 소재해 있으며, 인접한 간현리 694-1에는 한신이씨 사당이 위치해 있다. 현재 이 사당은 "지역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이영길 지적부동산과장은 "송와 이기 선생과 같은 훌륭한 청백리의 삶과 업적이 고향인 원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며"청백리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청백리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