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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국(桓國), 과연 존재했을까?

엔사이드 기자 블로그 2011. 4. 23. 20:57
환국(桓國) 과연 존재했을까?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구천년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B.C 2333년 단군왕검께서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우시기 그 이전에 약 오천년의 역사가 더 있었다고 한다. 조선 이전에 이미 1,565년 역년의 배달국(倍達國)이 있었고, 그 이전에 역년 3,301년의 환국(桓國)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을 찾아볼 수가 없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강단사학자들은 이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환단고기>가 위서(僞書)이기 때문에 그 내용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제 식민사학의 내용대로 국조 단군조차 실존인물이 아닌 곰의 신화로 보고 있으며 조선이라는 국가의 실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그 이전의 배달국과 환국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삼성기전 상.하(三聖記全 上.下)에서 환국에 대해서는 이런 기록이 있다.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 800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桓因)은 또한 감군(監群)으로서 천계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것을 익혀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르켜 천제환인(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는 안파견(安巴堅:아버지)이라고도 했다. 환인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 삼성기전 상 --

“판나류산 밑에 환인(桓因)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 동쪽의 땅이다.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 리니 통틀어 환국(桓國)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사납아국, 선비국,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니 합해서 12국이다. 7세를 전하여 역년 3,301년 또는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 삼성기전 하 --

즉 환국은 B.C 7,199년부터 배달국이 세워지는 B.C 3,898년까지 3,301년간 존재하면서 수메르(Sumer)국 등 12개 연방을 거느렸으며 그 영토가 엄청나게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3,301년간 환인이 7세를 전했다는 것은 7명의 환인이 아니라 쉬운 표현으로 7개의 왕조(王朝)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그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환국이 정말로 존재했던 것일까?
 
▲   환국의 영토는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라고 하며, 수메르국을 포함한 12개 연방으로 이루어졌다.     ©편집부

그 해답은 아래 유물/유적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 유물들은 어느 시대의 것인지 현재 전 세계 어느 역사서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중국의 오천년 역사보다도 몇 천년 앞서는 시대이기 때문에 역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시대가 어느 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서는 바로 <환단고기> 뿐으로, 지금으로부터 5,900년 전의 배달국 이전에 존재했던 환국의 유물/유적이었던 것이다. 
 

1. 유적/유물의 연대측정으로 본 환국

1) 14,000년 전 유물인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을 한 옥)
2006년 중국 북부 국경지대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우란차부시(烏蘭察布市) 화더셴(化德縣)에서는 한 무덤에 대한 발굴이 비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이 무덤은 3년 전 한국의 고미술품 수집가 김희용(59) 씨가 고고학적 논란이 되고 있는 흑피옥 31점과 인골을 발굴한 곳이다. 김씨는 흑피옥 31점과 인골 가운데 골반뼈만 꺼내어 모처에 보관 중이다. 서울대학교 공동기기원의 시료 분석 결과 흑피옥의 제작 연대가 무려 1만4300년 전후로 추정되면서 흑피옥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과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시료 분석대로라면 흑피옥은 구석기시대 후반에 해당되며 기존의 4대 고대문명보다 거의 1만년 이상 앞서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시료 분석을 의뢰한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는 "그러한 분석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한민족의 고대사를 포함해 종래의 인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라면서 "흑피옥 조각상의 정교함으로 미뤄 1만4000여 년 전의 '초(超)고대문명' 또는 '제1차 인류문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흑피옥 논란의 최대 관건은 제작 연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문제이다. 흑피옥을 깊이 탐구해온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는 "엄밀하고 과학적인 연대측정을 통해 실제 흑피옥의 제작 시기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흑피옥 출토지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하면 연대측정은 보다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희용 씨는 2008년 중국 당국에 자신이 소장한 흑피옥 전부를 기증하는 대신 한국과 세계 각국 학자를 포함시킨 조사단의 공식발굴을 제안했다. 결과 같은 해 11월 국가 문물국은 김 씨가 구체적인 지점을 공개한다면 정식으로 발굴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후 공식 발굴이 계속 늦어짐에 따라 9월 23∼24일, 우란차부시박물관 후샤오농 부관장 주도 아래 김씨가 발굴했던 무덤에 대한 재발굴이 비공개로 이뤄졌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서 비 학술적인, 학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했다. 발굴된 인골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고, 발굴 후 무덤을 다시 흙으로 덮어버렸으며, 인부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모든 것을 비밀로 하라고 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후샤오농 그는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그 유적의 인골과 무덤의 배치와 부장품 등으로 보았을 때 동이족의 유적이 확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 바란다.
http://www.hinews.asia/sub_read.html?uid=291&section=sc2&section2=

▲   1)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만년옥석문화전에 전시된 흑피옥 유물.  김희용 씨가 내놓은 남녀 흑피옥 조각상(사진 뒤쪽)은 높이가 120 Cm에 달한다.

2) 2006년 8월 김희용 씨가 흑피옥을 발굴한 네이멍구자치구 우란차부시  화더션 현장(위)에서 2009년 9월 22∼23일 다시 다시 확인 발굴(아래)이 진행됐다.  

2) 7,600년 전의 용의 모습
요령성 阜新(부신)유적에서는 중국대륙에서 제일 오래된 용(龍)의 부조 모습이 발굴되었고, 하가점 문화유적에서는 수없는 옥저룡(玉猪龍)형태의 옥 부장품이 발굴되었다. 이 모두 최소 기원전 5,600년 전 동이족의 석곽묘에서 부장품들로 발굴된 것으로 중국사학계에서는 용(龍)의 원류가 만주의 주인공인 동이족(東夷族=韓民族)인 것을 차마 발설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금의 요서 및 요동 일대(지금의 내몽골 정람기,요녕성등...)에서 발굴된 무수한 옥기와 부장품 그리고 피라미드는 바로 동이족의 문화로서 대륙최고의 문화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게 되자 단대공정, 탐원공정등 희한한 이름을 붙여 중국 서토족의 조상의 것이라 우기면서 학술대회 등으로 세계에 알리고 있는 실정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링크 바란다.
http://www.hinews.asia/sub_read.html?uid=313&section=sc2&section2=

▲  7,600년 전의 유적인 사해문화의 석소룡(石塑龍)과 용문도편(龍紋陶片)의 발굴 당시의 모습              ©편집부
▲  이러한 옥기를 만든 실체는 무엇일까? 옥은 경도가 쎈 물질이라 쉽게 가공되지 않는다. 
 
기원전 5,600년 전이면 중국의 역사가 존재하기 이전이다. 그렇다면 어떤 역사가 그당시 존재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환단고기>의 기록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환국의 유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1)의 14,000년 전의 흑피옥의 정교함이나 2)의 7,600년 전의 용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는 선사시대의 미개한 문명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된 뭔가 초고대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황제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동물인 용의 모습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당시도 국가 형태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유물들이 발견된 내몽고와 만주지역은 대대로 동이족들의 활동무대였던 것이다.  


2. 엄청났던 환국의 영토, 사실인가? 

1) 한국어는 알타이어족

우선 우리가 쓰는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이 알타이어족을 사용하는 민족들은 아시아 대륙의 최동북 지역으로부터 중국의 북부 및 북서지방, 몽골,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남부, 볼가강 유역, 터키, 중동 및 발칸 반도의 여러 지방,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 등 널리 분포되어 있고 현재 사용자 수는 1억을 넘는다.

역사적으로 알타이 제민족(諸民族)은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 초원지대에서 할거하던 유목민들로서, 유럽과 아시아에 수립되었던 문명제국을 거듭해서 정복해왔다.
 
기원전부터 중국의 역대 왕조를 침략·정복하여 지배했고, 이란, 비잔틴 제국, 아랍의 칼리프국, 인도 등도 침공·정복했으며, 그들의 민족이동은 동부 유럽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런지 고대 인도의 언어인 드라비다어와 티베트어는 한국어와 유사한 단어가 아주 많다.
 
▲  인도의 고대어인 드라비다어와 티베트어는 우리 말과 흡사한 단어가 아주 많다.

2) 수메르는 환국의 12개 연방 중 하나

환국의 12개 연방 중 수밀이국이 있다. 그리고 <단군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수밀이국은 단군조선에게 계속 조공을 바쳐온다. 이러한 수밀이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수밀이국은 바로 인류 최고의 문화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일으킨 수메르 문명이다. 그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방이며 인종이나 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 터어키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터어키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과 터어키가 4강에 동반 진출하자 "형제국끼리 결승에 진출하자”며 흥분하기도 했다. 그리고 60년 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형제국을 돕는다는 기치 아래 군대를 보내오기도 했던 혈맹이다. 왜 그들은 한국을 형제국이라 부르고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역사에 있었다. 터어키는 환국 이래로 배달국과 단군조선을 거치면서 고구려 때까지 연방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수메르문명은 이라크 부근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켰다. 터어키와 이집트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장례문화를 보았을 때 한반도의 고인돌은 만주 집안의 피라미드, 섬서성 서안의 피라미드,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이 유사한 점이 너무도 많다. 특히 섬서성 서안 서쪽에 있는 피라미드의 발굴 당시 동이족의 유적으로 확인되자 중국 정부는 그대로 덮어버리고 나무를 심어 위장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환국의 영토가 어디까지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  길림성 집안의 피라미드 고분군
▲  서안의 피라미드가 동이족의 유적으로 밝혀지자 중국 정부는 즉각 발굴을 중단하고 은폐를 해버렸다.
▲   이집트의 전설적 왕조인 티우 왕족의 미이라는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저 멀리 동방인의 모습이었다.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성훈(헌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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